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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조선의 불장 코인거래소 인천 미두거래소, 조선최대의 호화 결혼식 미두의 신 반복창의 몰락, 투기의 끝은 파국이다

by kchinup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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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거지' 라는 신조어를 들어 보셨죠??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주식거래는 딴 세상 얘기처럼 들렸었고,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주식을 절대 하면 안된다고 자녀들에게 교육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성년자 자녀들에게 주식으로 용돈을 주고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사기, 투기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던 비트코인이 이제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투자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주식이야기는 단골 소재가 되어 주식을 모르면 소외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00 여년 전, 그러니까 1900년대 초반에도 지금과 비슷한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인천에 생긴 미두거래소인데요... 오늘은 미두거래소에 대해서 알아보고 조선 최대의 부를 불과 1,2 년 사이에 쌓은 '반복창'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살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의 현실판 코인거래소? 미두거래소란?

 

미두거래소는 일제강점기에 인천이나 군산과 같은 항구 도시에 세워지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쌀이나 콩 같은 농산물의 선물 거래를 하는 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미두(米豆)란 한자그대로 쌀과 콩을 뜻합니다. 원래는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고 수출을 쉽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이곳은 전국의 투기꾼들이 몰려 드는 도박장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선물거래의 특성상, 적은 돈(증거금)만으로도 큰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구조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한방을 노리면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오사카에서 미두거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조선에 도입하면서 농민과 상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형식적 목적보다는 조선인들의 투기성을 역이용하여 합법적으로 조선인들의 자금을 탈취하려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미두의 신 반복창의 등장과 몰락

 

'반복창' 이라는 인물은 강화도에서 태어나고 열두살에 인천에 와서 일본인 미두꾼 아라키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인과 같은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는 미두거래소에서 시세를 외치는 '요비코'로 일하면서 미두시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그러는 중에 19살에 아라키의 신임을 얻고 시장 대리인으로 직급이 상승되면서 본격적으로 미두판에 뛰어 들게 됩니다. 

1920년에 반복창은 그가 지금껏 모아두었던 자금 500원으로 미두거래를 시작하게 되고 그 당시에 쌀값이 폭등하면서 근느 놀라운 예측력과 노하우로 1년 만에 재산을 40만원까지 불리게 됩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약 4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그 덕분에 반복창은 '미두신'이라고 불리우며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조선 제일의 미녀인 김후동과 조선 최고의 호화 결혼식을 올리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게됩니다. 더불어 인천에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대저택을 짓기 시작하면서 세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됩니다. 

그러나 불과 2년만에 그는 전재산을 날리고 사기 혐의로 구속까지 되게 되는데요... 반복창의 예측은 계속 빗나가고 쌀값이 폭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는 이혼을 당하게 되고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정신 이상 질환의 병까지 얻는 처참하고 비참한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조선의 '미두왕' 이라 불리우던 반복창은 생을 마감합니다. 

 

도박과 투기의 끝은 결국 파국이다!

 

미두거래소는 조선시대의 농민들과 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하에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에서 들여 온 제도 입니다. 

반복창이라는 젊은 부자를 탄생시켜서 조선인들은 제2의 반복창이 되기 위하여 미두거래소라는 거대한 투기시장에 돈을 투입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일본은 합법적으로 조선인들의 지갑을 손쉽게 갈취하게 됩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선물거래소 시장을 닮은 미두거래소의 순기능을 투기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만 현시대의 사람들은 과다한 정보의 투입과 주변인들이 큰 돈을 순식간에 벌었다는 카더라로 인하여 자기도 모르게 투자와 투기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분명히 반복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 미두거래소 까지 흔들만큼 영향력이 컸던 반복창은 불과 2년 만에 지금 시세의 400억 수준의 돈을 잃고 이혼까지 당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약 100여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도 미두거래소와 같은 시장은 이제 모두가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 속에 있고 그 시장을 추종하는 개미들은 오늘도 재산을 잃고 있습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투기의 끝은 결국 파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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