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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양신, 그리고 간신, 위징과 이세민(당태종)의 첫 만남, 태종의 거울 위징

by kchinup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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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간신의 차이를 알고 계시죠?? 한단계 더 나아가서 충신과 양신의 차이를 알고 계십니까?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당 태종 이세민과 위징의 관계는 군신 관계의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됩니다.

양신으로 기억되고자 했던 위징과 당 태종과의 순탄치 않은 첫 만남부터 마지막까지의 일화를 살펴보면서 충신과 간신, 그리고 양신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위징과 이세민의 첫 만남

 

<위징 동상>

 

위징은 태자 이건성의 측근으로서, 이세민을 제거할 것을 여러 차례 강력히 주장했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태자에게 "이세민을 선제적으로 공격하지 않으면 후환이 될 것" 이라고 간언했지만, 우유부단한 태자는 이를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626년 '현무문의 변' 에서 이세민이 형제를 제거하고 황제로 즉하면서 위징은 이세민과 만나게 됩니다.

 

이세민은 위징을 잡아들이고 그의 죄를 물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우리 형제 사이를 이간질하였는가?"

이에 위징은 담담하게 답을 했습니다.

"저는 제 주군인 태자를 위하여 충성을 다했을 뿐입니다. 만약에 태자께서 제 말을 들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대답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긴박한 순간에서도 태연하게 묵묵히 자신의 철학을 있는그대로 답하는 그 용맹함과 기개에 아마 이세민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세민은 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관직에 임명하며 자신의 곁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세민 역시 일반적인 왕이였다면 죽음으로 응당 해할것을 멈추고 이성적으로 판단한 끝에 이세민을 측근에 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신(忠臣)과 양신(良臣), 그리고 간신(奸臣)

 

위징은 단순한 충신이 아닌, 그 이상이길 바랬습니다. 그는 자신을 "충신(忠臣)" 보다 "양신(良臣)"으로 남기길 원하다고 말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충신으로 만들지 마시고 양신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충신과 양신의 차이를 설명하였습니다.

 

  • 충신 : 군주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지만, 결국 군주의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하거나 가문까지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 양신 : 군주와 함께 명성을 얻으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후대에까지 영광을 남깁니다.

 

위징은 간신과도 중요한 대비를 이루는 인물입니다. 간신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군주와 나라를 망치게 하지만, 양신은 군주와 나라 모두를 번영하게 함으로써, 위징의 양신에 대한 철학은 단순히 개인적인 명예가 아니라 국가와 군주의 성공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더욱 높이 평가됩니다.

 

당 태종의 거울 ; 위징

 

위징과 이세민의 관계는 단순한 상하관계를 넘어선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습니다. 위징은 직언을 통해서 태종의 실수를 바로잡았고, 태종은 이를 수용하며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힘을 썼습니다. 

위징의 죽음에 대하여 태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은 거울로써 의관을 단정히 하고, 옛것으로 흥망성쇠를 배우며, 사람으로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없으니 나는 거울 하나를 잃었다." 고 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이는 위징이 단순히 신하가 아니라, 군주의 성찰과 발전을 돕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음을 보여줍니다.

 

위징과 이세민의 과거 중국사는 리더와 참모의 관계가 조직이나 국가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위징처럼 직언을 아끼지 않는 참모와 이를 수용할 줄 아는 리더가 있을 때, 비로소 안정된 통치와 번영이 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리더는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올바른 조언을 아낌없이 하는 참모를 곁에 두어야 하며, 참모는 개인적 안위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여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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