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상식

6 25전쟁속에서도 지켜낸 유산, 해인사 팔만대장경

by kchinup 2025. 12. 30.
반응형

 

1950년 6월 25일, 한반도 전역을 집어삼킨 전쟁은 수많은 생명과 도시, 문화유산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전쟁 한가운데서도 기적처럼 지켜진 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 입니다.

만약 그 날, 폭격 명령이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팔만대장경이란 무엇인가?

 

팔만대장경의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입니다.

몽골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고려는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이 거대한 경전을 새겼습니다.

- 제작 시기 : 1236년 ~ 1251년

- 목판 수 : 81,258장

- 보관 장소 : 해인사 장경판전

 

특히 이 대장경은 오탈자가 거의 없고, 불교 경전의 구성과 체계과 완벽해 세계 최고 수준의 불경 목판본으로 평가받습니다.

 

6·25전쟁,  해인사도 안전하지 않았다

 

전쟁이 남하하면서 경남 내륙 산악지대에는 북한국과 빨치산(유격대)이 활동했습니다.

해인사 일대 역시, 공비의 은신처로 군사 이동경로로 인식되었고, 결국 유엔군 공습 대상 지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해인사 폭격 명령이 하달되기에 이릅니다.

 

폭격을 멈춘 한 사람의 결단

 

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공군 김영환 대령' 입니다.

그는 미 공군 폭격계획을 보고 강력하게 폭격 중단을 요청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해인사에는 인류전체의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있다"

전쟁 중 군사 작전을 멈추는 요청은 사실상 명령 불복종에 가까운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받아들여졌고, 폭격은 전면 취소됩니다.

 

만약 그때 폭격이 이루어졌다면,

팔만대장경은 전소하였을 것이고, 고려 불교 문화의 핵심이 소실되는 것이며 세계 인쇄와 기록문화사에 돌이킬 수 없는 공백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은 끝날 수 있지만, 사라진 문화유산은 다시 만들 수 없습니다.

 

총성과 폭격속에서도 한 사람의 판단으로 살아남은 팔만대장경.

그 목판 하나하나는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라 전쟁보다 강했던 인간의 양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반응형